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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 사회:: 생산수단이 만든 왕과 노예

by 에벤지 202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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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공산사회에서 생산수단이 발생한 이후에 많은 시간이 흘렀다. A와 B의 자손의 자손, 자손의 자손이 대를 이어왔다. 그리고 A와 B의 관계도 점차 고정되었다. A는 생산수단을 이용해서 지속적으로 생산물을 생산해왔고, 이를 통해 B를 지배해왔다. 이제 A와 B의 관계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고정되었다. A는 주인인 왕이 되었고, B는 A의 노예가 되었다. 사회는 계급으로 체계화되었다. 지배 계급으로 왕과 귀족이, 피지배 계급으로 평민과 노예가 구성되었다.
 

원시 시대와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A가 소유한 생산수단이 변했다는 것이다. 돌 조각은 생산수단으로서 더 이상 중요한 독점적 지위를 갖지 않았다. 누구나 돌 조각을 사용했고, 사회의 생산량이 증가했다. A가 소유한 생산수단은 더 큰 것이 되었다. 바로 토지, 영토였다. 이제 넓은 땅이 A가 소유하고 있는 생산수단이다. 토지, 영토가 생산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은 여기서 모든 가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땅을 소유하고 있으니 땅에서 자라는 곡식은 모두 지배자 A의 것이 되었다.


또한 A는 자신의 영토에서 살거나, 자신의 영토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 자릿세를 내게 했다. 거대한 생산수단을 소유함으로

써 A는 막대한 생산물을 소유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막강한 권력을 얻을 수도 있었다. A는 특별히 일하지 않아도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럼 일은 누가 하는가? 토지와 영토에서 곡식을 수확하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B다. B가 땀 흘려 노동해서 가을에 수확을 하면, A는 그 수확물을 모두 가져가서 일정량은 자신이 소비하고 나머지 일정량은 B를 먹이고 입히는 데 사용했다. A가 B에게 말했다.


“너 먹이고 입히는 것도 힘들다.”


B는 A가 고마웠다. 왜냐하면 자신이 평생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은 A가 자기 소유의 영토에서 농사지을 수 있게 허락해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생산수단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생산수단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원시 시대의 돌 조각은 생산수단이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생산수단은 토지와 영토 혹은 대농장이나 근대에 나타날 공장 같은 것들이다. 토지, 영토, 대농장, 공장이 돌 조각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혼자서 소유할 수는 있지만 혼자서 운영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서 거대한 땅의 주인은 A 혼자일 수 있지만, A 혼자서는 그 땅을 경작할 수가 없다. 그래서 A는 B를 고용해야 한다. 즉, 생산수단은 노동을 대신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것은 대농장과 공장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생산수단을 소유한 A는 자신의 생산수단에서 대신 일해주는 B에게 어떻게 대가를 지불하는가? A가 소유한 생산물에서 지불한다. 그렇다면 A가 소유한 생산물은 어디서 왔는가? 그것은 B의 노동력에서 왔다. 바로 이것이 생산수단의 진정한 의미다. 생산수단은 소유자가 타인의 노동력을 이용하게 만들어줌으로써 사회적 관계를 왜곡한다.


정말 무엇인가 이상한 것 같다. B는 바보인가? B는 자신이 노동해서 만들어낸 생산물을 모두 A에게 주고 A는 그중에서 일정량만을 B에게 돌려준다. 노동은 오직 B 혼자서 했는데, B의 노동의 결과물인 생산물은 A와 B가 나눈다. A가 생산수단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B는 여기에 생각이 이르자, 이건 아니다 싶었다. 뭔가 잘못되었고 부당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B는 항상 A가 시키는 대로 농사를 짓고 장작을 패고 가축을 기르느라 피부는 구릿빛으로 그을렸고, 몸은 단단하고 건강해졌다. 그런데 언젠가 한번은 A가 목욕하는 것을 우연히 보았는데, A는 평소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서 피부는 허여멀겋고, 팔다리는 가늘고 배도 나왔다. A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줄 알았던 B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A의 지배를 받을 이유가 없어 보였다. 이제 B는 A가 부르면 못 들은 체하고, A가 일을 시키면 마지못해서 설렁설렁 하기 시작했다. A도 B의 눈빛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곧 알아챘다. 조금만 뭐라고 해도 B는 가자미눈을 해가지고 쏘아보는 것이었다. 이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A는 어느 날 B를 불렀다. B는 구시렁거리며 또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A가 B를 가까이 부르더니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건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 나, 사실은 신이다.”


이후 B는 열심히 일했다. A가 일을 시키면 즐거운 마음까지 들었다.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가 번졌다. 신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열심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A가 생산수단을 독점하는 것이나, 그에 따른 모든 생산물을 소유하는 것이나, 자신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서 B는 아무런 불만도 없게 되었다.


‘신’은 요청된다. 지배자는 신을 부른다. 신이 진짜로 응답을 하거나 말거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신이 진짜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는 지배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지배자 자신이 부를 수 있는 ‘신’이라는 언어만 있으면 된다. 왜냐하면 신은 지배자가 사회를 지배할 권리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독단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자일수록, 그의 신앙은 절실해 보인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지배자에 의해 신이 요청된다고 해서, 혹은 지배자가 자신의 지배에 신을 이용한다고 해서, 이것이 신이 부재함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만 역사적, 정치적으로 신의 문제를 고려했을 때, 신의 이름이 정치를 위해 사용되었을 혐의가 짙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대 노예제사회는 종교를 통해 그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며 막을 내린다. 고대 노예제사회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토지와 영토라는 생산수단을 지배자가 독점하고, 그 독점의 정당성을 종교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고대 노예제사회는 모든 문명의 시작에서 발견된다. 구체적으로 메소포타미아, 고대 이집트, 고대 인도 등 정치와 종교가 일치했던 대부분의 제정일치사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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