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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리뷰

원시 공산사회 - 생산 수단의 탄생

by 에벤지 202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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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자. 어제로, 한 달 전으로, 한 세기 전으로, 수백 년 전으로, 수천 년 전으로, 이제는 시기도 불명확한 원시 시대까지 도착했다. 여기서 우리의 여행이 시작된다.
이곳에는 원시인 A와 B가 살고 있다. 이 두 원시인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함께 물고기도 잡아먹고 과일도 따 먹고 풀뿌리도 캐 먹으며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중이다. 가끔 고기가 먹고 싶어질 때면 A와 B는 협력해서 맘모스도 잡아먹는다. A가 이렇게 말한다.


네가 맘모스를 유인하면 내가 뒤에서 엄호하겠다.” B가 맘모스를 절벽으로 유인해서 맘모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 둘은 평등하게 맘모스를 나눠 먹는다.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공산사회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원시 사회는 원시 공산사회라 부른다. ‘공산(共産)’은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한다는 뜻이다.

 


평화롭게 공존해오던 A와 B는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성격이 깔끔한 A는 평소에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는 취미가 있었다. 동물 뼈는 동물 뼈 따로, 과일 껍질은 과일 껍질 따로, 씨앗은 씨앗 따로. 그러던 중 A와 B는 씨앗만 버린 곳에서 싹이 난 것을 발견했다. 인간이 식물을 컨트롤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농업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더 이상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위험한 생활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씨앗을 뿌리고 관리하며, 그 결실로 삶을 유지하면 되었다. 수렵과 채집으로 살던 때와는 생활 방식이 크게 변했다.


낮에는 밭에 나가서 노동을 했고, 한 곳에 오래 정착하면서 살림살이는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A와 B는 평등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노동력은 크게 차이 나지 않았고, 그로 인한 생산물의 차이도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흉년이면 함께 배고프고, 풍년이면 함께 배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밭을 갈며 돌을 골라내던 A는 밭에서 커다란 바위를 발견했다. 힘을 다해서 바위를 들어 밭 밖으로 뒤뚱뒤뚱 들고 나가던 중 그만 바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고, 바위에서 돌 조각이 떨어져 나온 것을 발견했다. 우연히도 한쪽 면이 날카롭게 깨져나간 돌 조각이었다. A는 고심하다가 이것을 농사에 이용할 수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실제로 풀을 베는 데 사용해보았다. 효과는 생각보다 훌륭했다. 보통 하루쯤 걸렸던 밭고랑 매기는 돌 조각을 사용하니 반나절만으로도 충분했다. 가을이 되고, 돌 조각을 농사에 사용하기 시작한 A는 그렇지 못한 B보다 더 많은 곡식을 수확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원시부터 근대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며 가장 중요하게 다룰 핵심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생산수단과 생산물이다. 돌 조각은 곡물을 생산하는 생산수단이 된다. 그리고 곡물은 돌 조각이라는 생산수단에 의해 발생하는 생산물이 된다. 생산수단과 생산물을 구분해야 하는 것은, 부와 재산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 바로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으면 부는 계속해서 발생한다.


사실 돌 조각을 농사에 이용한 것이나 그로 인해 곡식을 더 많이 생산해낸 것이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다. 더 배불리 먹고 편하게 생활하게 된 것이 잘못은 아니니까. 다만 생산수단을 독점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의 곡식 생산량에 차이가 커지면, 사회적 관계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 문제다. 다행히 아직 돌 조각은 독점하기 어려운 생산수단이다. B도 구하면 된다. 하지만 B는 아직 A가 돌 조각이라는 최첨단 제품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다시 A와 B의 사회로 돌아오자. 이제 A의 창고에는 곡식이 가득하고, B의 창고 안은 검소하다. 겨울이 오고, A와 B는 자신이 모아둔 곡식으로 겨울을 났다. 그리고 봄이 되었다. 보리를 수확하는 초여름이 되기 전까지 B는 굶주린 배로 보릿고개를 버텨내고 있었다. 삼 일째 밥을 굶고 난 후, A와 함께 풀뿌리나 캐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B는 A의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A는 아직도 배불리 밥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A의 창고에는 지난가을에 수확한 곡식이 충분히 남아 있었다. B가 말했다.


“여보게 A.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네그려. 우리가 고기가 먹고 싶을 때면 내가 맘모스도 유인하고 그랬었지. 말 나온 김에 옛정을 생각해서 곡식 좀 같이 먹지.”
A는 B와 함께 도우며 생활했던 과거를 떠올렸고, B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A가 말했다.
“그래, 그때는 참 즐거웠지. 여기 곡식이 있네. 그런데 오늘 내가 조금 피곤하니 화장실 청소 좀 부탁하네.”

지시 관계가 발생했다. 이제 A는 지시할 수 있는 위치에, B는 지시에 따라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다시 생각해보자. 어떻게 겉보기에 별로 다를 바 없는 A가 B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게 되었는가? A가 가진 생산물 때문이다. 그렇다면 A의 생산물은 어디서 온 것인가? A가 가진 생산수단에서 왔다. 즉, 생산수단을 소유하면 생산물을 소유하게 되고, 그 생산물을 이용해서 권력을 얻게 된다. 재미있는 일이다. 생산수단과 생산물은 단순한 물질이다. 그런데 그런 물질이 비물질적인 사회적 관계로서의 권력 관계를 발생시킨 것이다.

슬프게도, 아름다웠던 원시 공산사회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함께 일하고 동일하게 나누었던 평등한 관계는 생산수단의 발생과 함께 무너졌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슬픈 일도 아니다. 사회 전체로 보면 생산량이 증가해서 풍요로워진 것이 아닌가? B의 입장에서 보면 굶어 죽느니 A의 화장실을 청소해주고 배불리 먹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인지도 모른다. 판단은 잠시 뒤로 미루자. 우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생산수단과 생산물. 하나를 더 기억한다면, 생산수단과 생산물에 의해 발생하는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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